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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상] 의학이란 무엇인가?
    잡상 2024. 1. 16. 23:44

    의학과 낙관주의 - DALLE

     

    흉부외과 수술 장면을 영상으로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잔인하다, 신기하다, 어려워 보인다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영상을 보고 난 후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이게 되네' 였다. 인간의 존엄성은 가려진 주먹구구식 수술방법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충격과 괴리감을 주었던 것 같다. 항상 의학을 무엇인가 아름답고, 정교할 것이라는 환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때부터 의학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느끼고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지 못한채 지내다가, 우연치 않게 책을 읽다 의학에 대한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 나에게 생각을 잠기게 했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이라는 책을 읽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다.

    의학의 기술은 자연의 의학적 행위(medicatrix natura)를 모방한다. 모방한다는 것은 어떤 외양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향을 모방하고 본질적인 운동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개념은 낙관주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낙관주의는 자연의 경과에 따라 치유되리라는 믿음이며, 인간 기술의 효과와는 무관하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조르주 캉길렘-

     

    이 글을 읽고 의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고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의학이란?
    자연을 모방하여 이에 낙관하는 것

    나는 이 문장이 의학의 가장 큰 전제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인체는 기본적으로 '자연치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개체 단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언제나 항상성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질병의 발생 또한 한 개체 내에서는 치유를 하려고 하는 행동일 수 있다. 

    의학은 이를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치료를 진행한다. 원래 있던 생물학적 체계, 자연의 체계의 일부분을 밝히고, 이 부분의 작용을 촉진 또는 감쇠시켜 치료를 꾀하는 것이다. 약물은 밝혀진 분자적 pathway의 한부분을 촉진 또는 막아서 이에 대한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고, 수술은 주변 혈관과 환경의 조작을 통해 기관의 기능 향상을 유도하는 것이다. 

    의사는 위와 같은 치료를 수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가 기존의 자연의 섭리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기대하는 것에 그친다. 일부분만 이해한 과학적 사실(사실 이조차도 제대로 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을 기반으로, 다른 영향은 최대한 배제한 후, 자연 치유에 기대하여 낙관하는 것이 의학이다.

    사실 의학의 역사를 미루어보았을 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인체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에, 과거에는 4체액설과 같이 지금은 말도안되는 학설을 기반으로 치료하였다. 의학이라고 보기 힘든 정도의 학설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인류는 인체를 최선을 다해 밝혀냈고, 이에 낙관하며 더 좋은 치료법을 밝혀냈다. 현대의학의 근간인 근거중심 의학이 연구된 지 100년이 채 안되었는데 앞으로 100년 후면 지금의 의학 또한 4체액설과 다름이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의학에 대한 인류의 연구는 최선을 다했다. 조조가 화타를 의심한 것이 그 시대에 당연했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조조랑 같은 입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관이라는 표현을 의학의 해석하지 못한 부분을 비관적으로 치부하여 바라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단순히 인류는 아직 모르기에 인체에 대해 최선을 다해 연구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낙관한 것이다. 나머지 부분에 대한 부족한 설명에 대한 낙관을 나는 처음에 회의적이라고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까 의학이란 그러한 학문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낙관을 하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던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나의 불편한 진실을 콕 집어주고, 그럼에도 의학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누구는 낙관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결국 그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책의 초반부만 읽고 생각한 거라, 이러한 접근은 나의 과대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바와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절이 인상깊어서 글을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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